AI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뇌가 브레이크를 건다. 더 이상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가 온다. 글을 읽어도 눈만 움직이고 머리에 남는 게 없다. 새로운 도구를 써봐도 흥미가 안 생긴다. "지금 너한테 필요한 건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생각 정리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처럼.

발빠른 인플루언서들이 제공하는 정보들, 이걸 놓치고 있지 않니? 이걸 모르면 안된다? 등의 사람을 후킹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메시지에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에 가깝다. 처음에는 컨디션 문제라고 넘겼다. 그런데 이 상태가 반복되면서 패턴이 보였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결과를 확인하고, 또 다른 걸 시도하는 사이클을 빠르게 돌리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뇌가 멈춘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달리면 진짜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이어지기 쉽다. 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피로. 잠을 자도 회복되지 않는 무기력. 이건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다. AI 컨텍스트 스위칭에서 썼던 "기존과 다른 종류의 피로"가 축적되면 이런 상태까지 올 수 있다.

FOMO가 만드는 악순환

정보의 홍수라는 표현은 뻔하지만, AI 시대에는 그 홍수의 속도와 양이 차원이 다르다. 새로운 모델이 나오고,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고, 새로운 활용법이 매일 쏟아진다. 뒤처질까봐 따라가다 보면 정작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하고 있는지를 잊는다.

나도 그랬다.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바로 써봐야 했고, 누군가의 활용 사례를 보면 나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렇게 따라가면서 진짜로 내 것이 된 건 많지 않았다.

FOMO 자체가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 시작하는 외적 동기로는 충분하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볼까?"로 문을 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초기에 넓게 탐색하는 시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빠르게 변하는 분야에서 바깥을 아예 안 보는 것도 위험하다. 문제는 기준 없는 추적이 지속될 때다. 외적 동기만으로는 오래 못 간다. 남들의 속도에 맞추다 보면 자기 속도를 잃고, 자기 방향 없이 떠돌게 된다.

길게 가려면 어느 시점에서 내적 동기를 찾아야 한다. "이걸 왜 하는지"를 자기 안에서 찾아야 속도 조절이 가능해진다.

방향이 생기면 달라지는 것들

나의 경우는 자동화였다. 기획자로 일하면서 반복적인 업무가 많았고, "이건 자동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될지 안 될지 몰랐다. 그런데 AI에게 시켜보니 됐다. "이게 되네?" 그 순간의 재미가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러면 이것도 되나?"

이 과정에서 방향이 생겼다. 방향이 생기니까 두려움보다는 가능성이 더 크게 보였다. 새로운 도구가 나와도 "내 방향에 도움이 되나?"라는 기준으로 판단이 된다. 모든 걸 따라갈 필요가 없어졌다. 관심 밖의 것은 과감하게 넘길 수 있게 됐다.

번아웃이 왔을 때도 방향이 있으면 다르다. 쉬고 돌아왔을 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지가 명확하니까. 방향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던 때는 쉬고 나면 "다시 뭘 해야 하지?"부터 시작이었다.

물론 방향 설정이 만능은 아니다. 다만 내 경우에는, 멈춰서 자기 방향을 먼저 정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었다.

자기 주관을 가지고, 자기 속도로,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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