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도 읽는 시기와 궁합이 있다. 이미 충분히 경험한 분야의 책은 아무리 좋아도 새로운 감흥을 주기 어렵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사지 않는다.
예전엔 주기적으로 서점에 들러 이것저것 훑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그냥 샀다. 지금은 다르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표지 사진을 찍고, 도서관에 있는지 체크한 후 기다려서 빌려 읽는다. 어쩌면 책에 대한 설렘이 조금 식은 것일 수도 있다.
이제는 새로운 지식을 쌓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사고 과정을 읽는 것이 재밌다 보니 "지금 당장 읽어야 해" 같은 시급성이 떨어진 것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미묘한 메모의 묘미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책과 타이밍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나와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메모, 노트 테이킹, 제텔카스텐(Zettelkasten)…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지 꽤 되어 관련 글도 많이 읽었고, 이런저런 방법론을 직접 실험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특색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비슷한 생각들을 충분히 접한 상태였다는 게 문제였다. 사물의 뒷모습을 읽었을 때는 전혀 다른 분야라 신선했는데, 이 책은 그렇지 못했다.
아마 메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초입에 이 책을 만났다면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메모하고 있을까?
가장 최근 메모인데, 어떻게 보면 메모고, 어떻게 보면 투두(to-do) 리스트다.
나만 알 수 있는 단어들의 나열. 도형들. 딱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이를 기준으로 해야 할 일을 하기도 하고, 글로 쓰기도 하고, 바이브 코딩을 하기도 한다. 어떤 생각을 적다 보면 거기서 새로운 가지가 뻗어 나오고, 그 가지에서 또 다른 실마리가 생긴다.
나의 노트는
**정리를 다 해야 해!라는 완성된 시스템보다는, 계속 자라나는 놈도 있지만, ****그냥 사그라지는 놈이 더 많다는 것이 좀 그렇지만, **
하지만 손으로 쓰는 것이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사각사각 연필로... 그리고 책 내용에도 나오는 비~~싼 연필인 BLACKWING으로 끄적이고 있다. 나만의 플렉스랄까?
읽는 내내 "그래, 그렇긴 해."라는 생각은 들었다.
책에서 나오는 그리고 추천하는 앱들도 다 써보기도 했고, 다만 새롭다는 느낌은 오지 않다 보니, 저자의 생각과 관점도 나에게 와닿지 않는 느낌이었다.
책은 나의 상태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게 책의 숙명이기도 하다.
나는 관련해서 나름의 기준 및 생각이 곧게 세워져 있는 상태였고, 이 책은 나에게 도끼처럼 무엇인가를 깨지 못했을 뿐이다. 명확하게 일 맡기는 기술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책이 내게 오는 타이밍이 결국 독서 경험을 결정하는 것 같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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